[현대종교] 신격화된 이단교주,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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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신격화된 이단교주,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에게 묻다
  • 김유신 리포터
  • 승인 2019.10.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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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대처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
교회의 개혁은 운명이다.

본 글은 기독교 언론 월간 '현대종교'에 게재된 글을 리뷰한 것입니다.

신격화된 이단교주,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에게 묻다
이단, 한국교회에게 묻다 (1)

 

 

▲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격화된 이단교주와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 누가 더 문제일까? 만약 신격화된 이단교주가 친사회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를 비판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최근 한국사회의 기독교를 향한 비판 정서를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선택은 친사회적인 이단교주에게 호감을 표시할 가능성이 있다.

교회의 선택은 어떨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교회는 과연 이단교주만을 정죄하고, 소위 정통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에게는 면죄부를 줄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결정을 과연 합리성과 형평성을 중요시하는 교회 구성원들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을 촉진하는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닐까?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의 잘못이 이단교주의 죄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정통이라 미명하에 행해지는 사회·윤리적 죄악은, 그 죄질에 있어서 더욱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외부의 적인 이단교주보다 오히려 신앙공동체에 더 위협적인 것은 내부의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들이다. 동일한 죄를 저질렀는데도, 이단교주는 이단이기 때문에 정죄하고, 교회지도자는 정통이기 때문에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한편 비윤리적이지는 않더라도, 섬기는(serving) 지도자가 아니라, 오직 다스리는(ruling) 지도자로만 군림하려는 교회지도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실정법에 위법하지 않다고 비성경적인 행위를 일삼거나, 교회법에 위법하지 않다고 해서 주변 사회가 동의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언행을 일삼는 교회지도자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훼손하고 있다.

물론 이단교주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신격화는 이단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지만, 이단은 사람을 하나님, 구세주, 보혜사로 신격화한다. 이는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한국의 이단들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이단의 뿌리인 통일교 문선명은 자신을 구세주, 재림 그리스도, 하나님으로 신격화했고, 또 다른 뿌리인 전도관의 박태선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신격화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정명석, 이만희, 안상홍 등도 자신의 신격화에 여념이 없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한국에 나타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다.

문제는 이런 비상식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단교주들보다,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들을 향한 비판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볼 때, 교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단교주들의 잘못된 행위는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회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민족을 위해 순기능을 해온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엄격한 윤리·도덕적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의 개혁은 운명이 되었다.

사회적인 모범과 귀감이 되어야할 교회지도자들의 일탈행위를 정통이란 미명하에 포용할 사람은 이제 한국사회에는 없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를 치열하게 살며 사회를 걱정하던 교회가 이제는 반대로 사회의 걱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개혁의 주체’였던 교회가 이제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역사는 냉정하다. 교회가 화려했던 과거 활약상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위할 때, 사회는 교회의 현 위치를 진단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강한 교회지도자만이 비성경적이고 파괴적인 이단교주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교회지도자들이 이단교주들보다 더 윤리적이고 순결할 때, 교회는 이단 예방과 대처를 위한 영적인 힘을 소유할 수 있다. 교회지도자들의 건전성 확보가, 이단대처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돈 문제가 복잡한 교회지도자가 이단교주의 탐욕을 나무랄 수 없다. 성적 문제를 일으킨 교회지도자가 이단교주의 성범죄를 고발할 수 없다. 사회 문제를 야기한 교회지도자가 이단교주의 반사회성을 고발할 수 없다. 이런 교회지도자들이 이단교주들을 비판한다면, 사회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간단명료한 한 마디를 던질지도 모른다.

 

 

대안은 무엇일까? 한국교회는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이를 교단과 개교회적인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감시해야 한다. 성경적인 교회지도자상을 만들기 위한 교회 스스로의 자체 검열과정을 구축해야 한다.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 어리석게 될지라도, 세상 앞에서 조롱과 비웃음거리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務去邪僻 勿崇異端(무거사벽 물숭이단)”이란 말이 나온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해인 1517년, 조선왕 중종이 왕이 될 인종에게 준 10가지 훈계 중 하나이다. 이 말은 “(왕이 될 사람은) 간사한 행동을 버리기에 힘쓰고, 이단을 숭상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 언급된 이단이 기독교이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회지도자는, 하나님 앞과 세상 앞에 듬직하고 올곧게 서고, 정도와 원칙을 저버리지 않을 때, 존경받는 선한 목자가 될 수 있다.

조선의 왕들에 대한 여러 호칭들 중 묘호(廟號)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왕이 사망한 후 후대들이 정하는 것으로, 왕의 공이 크면 “조(祖)” 덕이 크면 “종(宗)”을 붙였다고 한다. 물론 교회지도자들에게 이런 호칭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공’을 세우거나 ‘덕’을 끼친 교회지도자들은 선한 리더십의 표상으로 교회 역사에 길이 남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단교주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단교주들이 비윤리적인 교회지도자들에게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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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 현대종교

http://www.hdjk.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6&item=&no=14603

▲ 교회와 이단 / 탁지일(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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