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의 메모장] 대체 저 양반은 왜 저러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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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의 메모장] 대체 저 양반은 왜 저러는 건가요?
  • 윤재덕 컬럼리스트
  • 승인 2019.12.21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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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메모장을 공개합니다.

1.

  신천지 피해 가족에게 심심치 않게 듣는 질문이 있다. "대체 저 양반(이만희씨)은 왜 저렇게 하는 것인가요?"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히틀러에게 던진 바 있고, 지젝은 그 대답들을 중세 해석학의 네 가지 방법에 따라 정리했다. 나는 이 분류를 이만희씨에게 적용해보고자 한다.

  1. 축자적 : 그는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통제하지 못했다.
  2. 도덕적 : 그는 권력과 돈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기를 친 것이다.
  3. 알레고리적 : 이만희씨는 진짜 신천지의 교리를 믿고 있다.
  4. 영적, 신비적 : 그 뒤에 사탄의 영이 작용하고 있다.

  지젝이 말한 것처럼, 네 가지 답변들은 서로 배제하고 있으면서도, 각각 설득력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3번이다. 예컨대 이만희씨가 신천지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면(3), 2번 답변은 성립될 수 없다. 또한 그가 돈과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싶은 타락한 본성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라 가정해도(1), 역시나 3번과 충돌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각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이 네 가지 답변을 하나의 그림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2번에서 "의도적"이란 말을 수정해야 한다. 그는 의도가 있었지만, 때론 없기도 했다. 마치 평범한 우리처럼 말이다. 그러면 3번을 양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믿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마치 평범한 우리처럼 말이다. 모든 인간은 역설적인 존재이듯, 이만희씨도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아이러니한 태도, 즉 우리가 "나도 모르게 그랬어"라고 말할 때의 그 태도. "의도적"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성의 면모 말이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한 면모 뒤에는 사탄의 영이 작용하고 있었다. 즉 이렇게 정리가 된다. "타락한 인간 이만희는 권력과 돈을 위해 사기를 쳤으나, 때때로 자신이 벌려놓은 사기판에 스스로 속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를 하면 다음의 문제들이 이어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래서 어쩌라는거야?"라는 반문이다. 이만희가 그런 인간인 것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사안인가? '이만희가 아이러니한 면모가 있다' 라는 결론은 아무런 실천도 불러오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또한 이런 정리가 가져오는 불편함은, 저렇게 '아이러니한 인간'으로 드러난 이만희의 모습은 우리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과 돈, 혹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쉽게 속이고, 때때로 이것을 "나도 모르게 그랬다"고 합리화하지 않은가? 즉 저러한 분석은 '이만희는 결국 인간이다'라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나는 세 번째 문제에 대해서 상술하고 싶은데, 그것은 저런 아이러니한 죄인의 모습을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다고 보는 경우이다. '사탄의 영에 사로 잡혔다'는 원인 분석은, '원인 분석'이라 말하기도 부끄럽다. 왜냐하면,

"그가 사탄에게 사로잡혔으니까 저러는 거야. 
저러기 때문에 사탄에게 사로 잡힌거야"

  이런 식의 출구없는 순환 논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이 되어버린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발언은 오히려 이만희를 돕는 꼴이다. 신천지가 두려워하는 것은 신천지의 구체적인 잘못들을 공론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악의 화신으로 그리면 그릴수록, 이것은 그의 잘못들을 은연중에 정당화하는 기제를 만들어버린다. "그가 사탄의 영에 사로 잡혀서 그래."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혹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원인 분석은 아닌가?

2.

  그래서 그를 악마의 화신으로 보는 것보다는 그를 비웃어버리는 조롱이 더 나은 태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가 웃음 포인트인지 생각해보자. 보혜사라고 추앙받는 인간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바로 그 지점 아닌가? 외도하는 보혜사, 말 바꾸는 보혜사, 욕 하는 보혜사.

  그런데 불편한 진실은, 이만희씨에 대한 조롱이 그의 숭고함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박살난 숭고함"이웃음 포인트였고, 얄궃게도 신천지 교인은 그 숭고함이 박살난 이만희씨의 형상 속에서 메시아의 고난을 발견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를 "핍박"이라 칭하지 않는가?

3.

  악마와 조롱 사이에서, 우리는 제 3의 대안을 찾고자 한다. 이만희를 이만희로서 보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악마적 배후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박살난 숭고함을 비웃는 방식도 아니다. 우리가 이만희의 허술함을 비웃다가도, 그 비웃음이 중단되는 지점에서 조롱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그 한계가 드러날 때 곧 제 3의 대안 또한 떠오른다. 곧 "탈퇴자들을 경유해서 그를 보는 관점"이다.

  탈퇴자들은 이만희씨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게임에 빠졌던 이들이고, "영"으로 오신 예수를 받았다던 숭고한 인간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비껴가려 했던 사람들이다(그들이 죽지 않는 노인을 따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각박한 현실을 대하는 간편한 방식 속에서 그들은 즐거웠을 것이고, 예배와 포교만 하면된다는 단순한 생각에 자신의 인생의 결정권을 넘겨주었던 자들이다. 다시 말해 이만희씨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이유로 이해 이 언어게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현실의 무게가 배로 무겁게 짓눌렀고, 그들이 중심에 놓았던 숭고한 인간의 자리는 빈칸이 되어, 또 다시 "말씀이 있는곳"을 찾는 텅 빈 인간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었다.

  이 텅 빈 인간이 바라보는 이만희씨는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이만희씨를 더 이상 숭고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이만희씨를 조소한다면, 그 조소는 자조일 수 밖에 없다.

  이 텅 빈 인간이 자신을 채워나가는 시작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신천지의 이데올로기에 속았고, 그로 인해 타인을 속이는 죄를 신천지와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이전에는 '자신의 영광'이었으나, 이제는 '인정된 잘못'이 되어버린 그것을 응시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유대교를 바라보는 회심 이후의 바울과도 같다. 이 바울과 같은 응시만이 신천지 문제 안에서 희망을 분별할 수 있다.

  신천지 붕괴 이후, 현 요한 지파장인 최동희씨가 공개 재판석에 나왔다는 상상을 해보자. 그가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잘못을 인정하는 올바른 선택'을 배제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란 '나는 몰라서 그랬고, 자신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비하와 격하일 뿐이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관점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으리라. 

출처: https://jaeduggi.tistory.com/ [아, 우주는 겁나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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