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타파] 신천지에서 돌아온 청년들에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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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타파] 신천지에서 돌아온 청년들에게-1
  • 김평강 컬럼리스트
  • 승인 2019.12.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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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신천지에서 회심한 약 30여 명의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구리초대교회 신현욱 목사님의 요청으로 상담받고 회심한 청년들이 수련회를 하는데 특강을 해달라고 해서입니다.

 

저는 수련회 특강이면 목사님들이 해야지 왜 나같은 사람에게 부탁하느냐고 완곡하게 사양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의 아픔을 가장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부탁드린다"는 목사님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덜컥 승낙했었습니다.

 

어쩌면 제 간증과도 같은 그 특강을 준비하고 청년들을 만나면서 청년들이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고 하여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사역에 대해 방향을 정하게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청년들을 한사람 한사람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고생많았다고 뜨겁게 안아주었습니다.

 

그 특강자료를 기억을 되살려 두 차례에 나누어 올립니다. 어쩌면 개인적인 정보도 들어있는 이야기를 굳이 올리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신천지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신천지를 경험한 것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려고 연단하신 것이다"라고요...

 

또 신천지에 빠져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상담하면서, 아직 신천지에 있는 아이들이 회심하게 되면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지 부모님들도 미리 알고 기도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천지에 빠졌다가 회심한 우리 청년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 치유되고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교회가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신천지에서 돌아온 청년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소  개

며칠 전 신현욱 목사님에게 여러분들의 수련회 특강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잠깐 고심했었습니다. 제가 신천지예방이나 상담사역에는 적지않은 특강 경험이 있지만 정작 수련회 특강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간 여러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격려가 될까 고심했습니다, 그러다가 메시지를 전하려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은 메시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시지라면 여러분들 그동안 지겹도록 들으셨을테니까요.

저는 약 15년간 이단상담사역을 하는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요. 그 교회에는 여러분들처럼 상담받고 회심한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착하고 신실한 청년들이지요...

저는 오늘 이 특강을 준비하면서, 같은 교회에 있지만 혹시나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말 꺼내기 조심스러웠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평소에 교회 청년들에게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청년시절 겪었던 비슷한 경험을 나누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또 17년간 신천지를 만나고 싸워오면서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5~60대를 고스란히 보낸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진솔하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만 강의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큰 제목만 띄우고 성령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강의를 진행할까 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00공학을 전공하고 40년 가까이 건설엔지니어로 살아왔습니다. D시에 살고 있으며 60대 중반이지만 아직 현직에 있으면서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여년 전 충청지역 고속도로 공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그곳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신천지를 만나게 된 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시기였습니다. 2000년대 초에 그곳에서 약 3년간 근무했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근무가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때문에 인생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충청지역 고속도로 현장에 근무할 때 사무실이 G시에 있었는데, 가까운 D시를 자주 놀러왔습니다. 주로 직원들과 회식하러 다닌 것인데요. 그때 그 도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산도 많고, 서울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그전에는 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았었습니다. D시는 전국의 중심에 있고, 서울 못지않은 문화적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이곳에 와서 살아야겠다고 막연히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어요. 고속도로 공사를 마치자마자, 저는 운명처럼 D시에 있는 건설현장의 책임자로 부임하게 되어 수년간 가족들과 떨어져 사느니 아예 집도 팔고 D시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 50 정도 되었기에 그 현장 끝나면 제2의 인생을 D시에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오륙도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륙도 사오정이 뭔지 아세요? 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놈이고 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직장생활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던 시대였지요.

제 어머니가 평양출신으로 몇 년 전 향년 101세로 돌아가셨는데 서울 서대문에서 꽤 알려진 평양옥이라는 냉면집 운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당시부터 IT에 눈을 뜨고 <평양맛닷컴>이라는 도메인도 선점하여 www.평양맛.com 이라고 멋있게 간판 달고 장차 아내와 아담한 냉면집 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D시의 현장 끝나면 50대 후반이 되니 도둑소리 듣기 전에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한 셈이지요.

그러다가 아내가 2002년도 D시로 이사 오자마자 신천지에 덜컥 빠졌습니다.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이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아예 옮긴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이 평생 섬길 교회를 정하는 것이었어요. 교회를 정하려고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이 교회 저 교회 알아보고 있는데, 그때 가족이 신천지 추숫꾼에게 넘어간겁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신천지에 대한 경계나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이예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성경에 대해서 가끔 예전과 다른 소리를 하거나 하루종일 집을 비우는 것 같아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워낙 믿음이 좋고 착하고 순종하던 아내였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정예배 드리는데 결정적인 것을 발견했어요. 아내가 꺼내놓은 수첩을 무심코 보았는데 거기에 이상한 내용이 적혀있는거에요. 비유, 씨밭나무새... 신앙생활하면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말이 있는거예요...그 다음 이야기는 다들 아실테니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인생에서 신천지를 만나다.

이렇게 해서 제 인생에서 신천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공학도로 좀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성격이라 처음부터 다그치거나 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천지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어떤 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신천지에 대한 정보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던 시절였습니다. 그러다가 대박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과천장막성전의 유재열이라는 사람이 배도자이고, 오평호가 멸망자, 이만희가 구원자이고, 과천장막성전이 하나님이 역사하신 첫 장막이었다는 정말 코미디 원고같은 자료였어요. 지금이야 흔해 빠진 자료지만 그 당시 처음 신천지를 만났을 당시는 너무나 말도 안되고 황당한 자료였습니다.

저는 그때 무릎을 쳤어요. “우와...이거만 가지면 아내를 금방 꺼낼 수 있겠다”고 자신했거든요. 왜 그런지 아세요? 제가 80년대 초반에 바로 과천대공원을 건설할 때 엔지니어로 직접 공사에 참여한 사람이거든요.

과천 청계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측량하고 산을 깎고 들을 메우며 동물원과 공원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입니다. 특히 사자우리와 하마우리를 제가 담당했었습니다. 그건 아내도 압니다. 나중에 아이 낳고 대공원에 놀러가서 아이에게 “저거 아빠가 만든거야” 하고 가르쳐주기도 했었거든요...

머리 쌩쌩 돌아가던 젊은 시절, 그때의 과천상황을 너무나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만희가 장막성전의 멸망의 발자취를 찾는다면서 철거된 폐허 앞에서 날짜도 안맞는 사진 찍고 하는 그런 자료를 보고, 제가 얼마나 우스웠겠어요?

1992년에 발간된 '신천지발전사' 50쪽, 이만희는 과천대공원 건설을 위해 철거된 과천장막성전의 페허에 찾아가 마태복음 24장의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았다"는 실상이 이루어졌다고 사기쳤다.
1992년에 발간된 '신천지발전사' 50쪽, 이만희는 과천대공원 건설을 위해 철거된 과천장막성전의 페허에 찾아가 마태복음 24장의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았다"는 실상이 이루어졌다고 사기쳤다.

이만희가 다른 사람에게는 사기 쳐도 저만은 못 속이는 기가 막힌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만희 입장에서는 임자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공사과정에서 장막성전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신도들의 극악스러움에도 진저리쳤던 사람입니다.

“에이~ 이거 보여주면서 잘 설명해주면 아내는 금방 거짓을 깨닫고 돌아오겠네... 아마 이런건 모르고 교리에 빠졌나보다..” 자신만만하게 D-데이를 잡고 분위기 잡은 다음, 자료를 준비해서 아내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아... 저는 제 인생에서 그날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속아 넘어갔지만 내가 잘 설명하면 돌아올 줄 알았던 아내는 그날 밤 꿈적도 안했고, 그날부터 신천지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안 통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17년이 흘렀습니다.

 

나는 왜 신천지와 싸우는가?

17년쯤 되니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제 인생을 구분하자면 저는 아내가 신천지 빠지기 전과 후로 나누고 싶어요.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빠지기 전에는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하던 아내가 어떻게 변했느냐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거예요. 참 힘들었습니다.

상담 이야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토록 착하던 아내가 상상할 수 없이 공격적으로 변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여러분들도 부모님들이 “상담받으러 가자”그러면 그랬었지요?^^

저도 사람인지라 아내가 저에게 신천지 대적하는 마귀라고 공격할 때는 정말 힘들어서 이렇게 살 바에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왜 그런줄 아세요? 바로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사이비종교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심각한 이념문제에 빠져 오랜 시간동안 방황하고 허우적거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그런 과정을 겪는 것 같아요. 제가 젊은 시절 꽤 오랜 시간동안 착각, 몰입, 분별력 상실을 체험했기 때문에 아내도 그런 것이니까 착각과 미혹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겪을 수 있어요. 저는 이념문제를 겪었고 여러분은 신천지를 겪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본질은 같아요.

 

나의 삶과 역사에 대한 책임

저는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책 중에서도 역사책과 사회과학책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종종 자문했습니다. “아... 내가 책에서 만나는 역사적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시대를 살고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전후 남북대립하던 이념의 혼란기에 태어났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몸 하나 보존하겠다고 왜놈들의 앞잡이를 하거나, 양반세력의 끄나풀, 나약한 인텔리, 낮에는 태극기 흔들고 밤에는 인공기 흔드는 회색분자로 살진 않았을까 끊임없이 책에서 만나는 상황을 자문했었습니다.

신천지와의 첫 만남은 이런 자문에서 시작되었고 그 싸움을 17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신천지와의 만남과 싸움은 제 인생 역사의 한 부분인 것이지요.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입장에서 그냥 놔두어서는 안될 사악한 사단의 세력, 이만희라는 사이비교주와의 싸움이라는 "개인적 역사소명"이 더해진 것이지요.

 

1970년대에 있었던 일

제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씨가 영구집권을 위해 10월 유신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억압하던 시대였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정말 이해 못할거에요.

학교 앞 식당같은 곳에는 일명 짭새라고 불리는 사복경찰이 쫙 깔려서 조금만 수상한 소리하는 학생들을 무조건 잡아다가 족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절대 정치적 견해나 입장에 이야기는 아니니까 선입견 없이 듣기 바랍니다)

저는 그 당시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니 왜 민주주의 국가에서 책에서 배운대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총칼로 짓밟는 것도 모자라 학교에 탱크를 주둔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라를 온통 자기들 장기집권이라는 목적을 위해 불안에 떨게 만드나? 이게 제가 젊은 날에 가졌던 의문이었고 가장 중요한 화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이념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념서적이라고 해서 대단한건 아니고, 그 당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라든가, 한겨레신문사의 주필이던 송건호 씨나 백기완 씨가 쓴 <해방전후사의 인식>, 영화 변호인에도 나왔던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정도로 지금이야 널리 알려진 사회과학서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책들이 금서였고, 이념서적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빨갱이 소리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쓴 홍세화라는 분은 박정희 군사독재를 반대한다는 삐라를 뿌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면 사형감이라는 소리에 놀라 프랑스에 망명까지 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책에 보면 프랑스의 망명신청 담당자가 왜 프랑스로 망명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삐라를 뿌렸는데 잡히면 사형당한다고 대답했더니 프랑스 관리가 “장난하냐?”고 되물었다는, 정말 현실이 장난같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문제는 그런 이념자체가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번 몰입하게 되면 어떤 것이 진리이고 누가 옳고 그르냐의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천지를 경험한 것 못지않게 젊은 날을 온통 뒤흔들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천지 교리에 한번 빠지면 뿅 가잖아요? 이념도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날 마땅히 해야 할 장래준비에 소홀하게 되고 부모님 속도 어지간히 썩혀드렸습니다. 특히 어머니 속을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아버님께 허리띠로 맞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꼴통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 특히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의견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만 맞다고 꽂혀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 나이 때는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았던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상담 안 받겠다고 속 썩이는 것과 똑 같았습니다.^^

 

회복의 길, 예수 그리스도

그때 제가 군대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태동기였습니다. 소위 중동 오일달러를 긁어모으던 시대였습니다. 요즘같이 취업난 그런게 전혀 없고 신입사원이 중동지방에 가서 2~3년 고생하면 서울 잠실 15평 아파트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건설관련학과 나오면 입도선매식으로 아무나 막 데려갔습니다. 저도 부모님들의 간절한 바램도 있고 일단 취업은 해야겠기에 대기업에 들어가 중동도 다녀오고 30대 초반에 서울 근교에 번듯한 집도 장만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병이 도졌습니다. 그놈의 이념이 문제였습니다. 한창 친구들이 장가가고 돌잔치하고 하던 시절에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직장생활의 권태기와 못다 이룬 이념에 대한 집념이라고 해야되나요? 그게 또 저를 흔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부모님께 상의도 안 드리고 멀쩡한 직장을 일방적으로 그만두고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으로 좀 더 자유롭게 얽매지지 않으면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이념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 P시에 내려가 목장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목장은 생활수단의 방편일 뿐이고 P시으로 내려간 진짜 목적은 좀 더 깊이있는 역사공부와 이념에 대한 확고한 체계를 세우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날의 철없고 맹목적 집념이었지요. 정말 대책없고 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생각이 비슷한 친구와 둘이 내려가 목장을 운영했으니까요. 여러분들이 신천지에 몰입하여 가출하고 그런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념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이 딱 부러지게 뭔가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파고들어도 혼돈은 계속되고... 경험도 없이 겁 없이 시작한 목장에서 소는 막 죽어 나가고 망해가는 소리가 들리는거예요... 그때 저는 소위 말하는 “이념이 밥 먹여주지 않더라”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소 먹일 사료값을 조달하려고 두 끼 먹고 견디다가 나중에는 라면으로 세끼 때우고...사람은 굶어도 소는 먹여야 되거든요. 소가 배고파서 울기 시작하면 장난이 아니예요.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종교의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목장에 내려가서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념서적을 읽다가였습니다.

한완상 교수라고 노무현대통령 시절에 부총리하신 분인데, 독실한 크리스찬이면서 박정희 시절에 반정부운동으로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던 분입니다. 그 분이 쓴 책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는거에요.

그 분이 감방에 있을 때였습니다. 원래 감옥에는 성경책이 반입이 안되는데, 기드온성경이라고 신약하고 시편만 있는 손바닥만한 성경을 몰래 가져다가 틈틈이 읽었답니다. 그러다가 감방 운동시간에 같이 반정부운동하다가 붙잡혀온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의 얼굴이 다 죽어가게 되었더랍니다.

그 당시 반정부운동 하다가 잡히면 최소 무기징역이였던 시절이니, 살 소망이 다 무너지고 고문에 구타에 말이 아닌 거지요. 그래서 한완상 교수는 고민하다가 성경을 읽고 힘내시라고 애지중지하던 성경을 복음서 중심으로 쭉 찢어서 복음서는 목사님께 드리고 자기는 사도행전 이하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며칠 후 운동시간에 만난 그 목사님의 얼굴이 확 바뀌었다는거에요. 그래서 얼굴이 좋아지셨다고 인사하니까 교수님이 주신 복음서를 읽으면서 소망이 생기고 힘이 나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나름 존경하는 분이 허튼소리를 하실리 없고 “도대체 성경에 어떤 내용이 있기에 다 죽어가던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교회갈 때마다 그냥 폼으로 들고 다니던 성경을 신약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은 두껍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이념서적은 밑줄 쫙 쳐가면서 많이 읽었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그때를 저는 정확히 기억합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은혜의 시간을 체험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5:8 입니다. 그 말씀이 어느 날 팍 꽂혔습니다.

소똥 냄새나는 외양간 딸린 방에서 비로소 내가 죄인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이념을 통해 내 삶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하고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직장도 그만 두고 목장 하겠다고 P시까지 내려왔는데, 참 진리는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지요... 그 후 저는 바로 목장을 정리했습니다.

또 나이가 들면서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이념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사상일 뿐, 어떤 이념도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부터 지긋지긋한 이념 천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후 목사님의 중매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직장도 새로 구하고 신앙생활 잘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아내가 신천지에 빠지기 전까지는요...

 

체험과 연단이 준 마음의 변화, 배려와 기다림

젊은 날을 돌아보니 제가 이념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제 개인적 성향 탓도 있지만, 그 시대의 부조리. 불평등, 군사독재자들의 더러운 탐욕, 배금주의가 팽배했던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젊은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정의와 正道에 대한 갈등이 컸거든요.

여러분들도 비슷하잖아요. 신앙인으로서 때 묻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오늘날 일부 기성교회의 부패와 탐욕, 목회자들의 위선, 사회의 양극화, 젊은 세대의 고통 등을 만나면서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신천지로 연결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젊은 날의 체험은 신천지에 빠져있는, 아니 신천지를 경험하고 있는 제 아내나 다른 분들, 또 회심한 분들에 대해서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긍휼이나 포용, 사랑...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시선입니다. 공감대와 동질감이랄까요... 물론 때로는 아내를 빨리 구출하고 싶은 안타까움 때문에 여러번 마찰도 있었지만,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 누려본 사람으로서, 그 길을 떠난 아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힘들게 발견한 진리에 대한 영적 의무감이 저를 언제까지라도 악한 자들과 싸우며 기다릴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 된 것 같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혼에 대한 사랑, 가족의 소중함,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과 같이 신천지를 경험하신 분들의 입장을 좀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전적으로 젊은 날의 체험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시절의 체험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는 이런 싸움을 감당할 능력은커녕 싸울 마음도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제가 신천지를 대적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합니다. “000지파에도 극성스러운 남편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 같이 지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요...

그러나 저는 젊은 날의 그러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힘들게 발견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아내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거든요. 남자라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가정을 끝까지 지켜야 되는 의무도 있고요.

 

상처의 극복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젊은 날에 이념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어리석음을 씻어버리긴 했지만 상처는 남았습니다. 그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고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상처까지 이야기하자면 오늘 밤새 해도 다 못할테니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생략하겠습니다.

전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며 산다고 해서 금방 뭐가 달라지고 항상 행복하고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예수 믿고 살아가면서도 온갖 문제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제가 그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던 것은, 상처를 감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저는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가령 여기 손등에 상처가 있는데 그 상처를 잠시 가린다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약을 바르든가, 환부를 도려내든지 하면서 그 상처를 적극적으로 치유해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께서 신천지에서 겪었던 경험을 부끄럽거나 상처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신천지를 경험하게 하신 진정한 뜻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신천지에 가게 된 것도, 신천지가 미혹한 것도 있지만 여러분 스스로가 성경을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선한 목적이 있었잖아요?

그로 인해 생긴 상처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는겁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선택 중의 하나였다고 받아들이세요. 오히려 저절로 낫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치료하셔야 합니다.

어쩌면 제가 젊은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황금같은 50대와 60대를 고스란히 신천지와 싸우면서 살고 있는 것도 젊은 날 겪었던 상처의 연속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계속되는 것일까...

이처럼 앞으로 여러분도 신천지에서 막 나왔을 뿐, 여러분 앞에 전개될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제가 상담하면서 경험했던 세 가지 유형의 청년들 사례를 들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또 여러분이 경험하게 될 다양한 사례를 미리 경험한 사람으로서요. 그 길이 여러분이 가게 될지도 모르는 길이니까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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