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타파]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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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타파]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 김평강 컬럼리스트
  • 승인 2019.11.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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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붕괴를 앞두고 한국교회에 전하는 제언(提言)-2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사회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 편은 구출될 수 있었음에도 재난대비 시스템의 부재로 물에 빠진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같이 아파하는 시각과, 다른 한편은 남의 일인 양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심지어 그만 우려먹으라고 비난하는 시각인데, 대체로 비슷한 비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피해가족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고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부류와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단에 빠진 것으로 예단하며 무관심과 배척으로 일관하는 부류가 존재합니다.

필자는 사랑하는 가족이 이단에 빠지자 그동안 섬기던 교회를 떠나 이단상담사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를 떠난 것은 가족이 이단에 빠진 것에 대한 상처와 자격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 가정에 마치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교회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 더 컸습니다.

이단피해자로서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이단에 빠진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월호와 같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았으며, 그 비율이 세월호와 달리 무관심 쪽이 훨씬 많은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습니다.

섬기던 교회를 나온 후 필자는 정통교회 출신 목회자가 이단사역하는 교회에서 10 여년, 이단 출신 목회자가 회심 후 사역하는 교회에서 약 5년간 섬기면서 이단에 빠졌다가 회심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상처와 아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경험했습니다. 또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이단대처,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단사역을 하는 교회를 섬기다보니 이단들의 공격과 고소고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부적 요인보다 일반 교회는 물론 이단사역을 하는 교회에서조차 이단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었습니다.

미혹된 영혼을 어떻게 해서라도 구출하고자 하는 영적 절박함보다는 "내 교회만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이단사역이 교회 성장과 발전의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이단사역을 소명감 없이 하다보니 조금만 어려워도 중단하거나 심지어 재정비리 문제에 대한 제보를 받아 이를 확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단피해자들의 아픔을 잘 알고 상처를 품어주어야 할 전문사역교회조차 이럴진대, 일반 교회에선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할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머지않아 이만희 사후, 신천지 붕괴를 앞두고 20만 명이 넘는 신천지인들이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생각하면 과연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하기 전에 성경은 “이단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검색사이트에서 '이단'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개역한글과 개역개정 버전에서만 신구약 통틀어 5차례씩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이단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라고 하는 의미의 구절은 디도서 3:9~11이 대표적입니다.

디도서 3: 9~11 (개역개정 성경)
디도서 3: 9~11 (개역개정 성경)

위 구절이 단상에서 널리 선포되어서인지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한두 번 훈계하다가 듣지 않으면 멀리 해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신천지의 사상 유례없는 악랄한 미혹수법에 피해를 본 교회나 성도들이라면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무조건 경계하고 쫓아내야 될 대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맹도’, ‘개천지인’이라고 호칭하며 비하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교회에 새가족이 들어오면 감사하기보다 혹시 “신천지 아닐까?”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역개정 성경 외 헬라어를 기반으로 번역한 다른 성경버전에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현 대신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 ‘논쟁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성경
쉬운성경

영어성경 NIV 버전에서도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표현하고 있으며 원어를 바탕으로 번역한 최신 한글버전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과 "이단의 미혹에 빠진 피해자"를 마땅히 구분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쓰면서 교회에 들어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관한 싸움"을 일삼는 사람들을 피하라고 권면하고, 이런 사람들을 한두 번 경계하다 멀리 하라는 것이었지, 이단에 빠져 구원의 길을 벗어난 불쌍한 피해자들까지 멀리 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신천지 이만희와 JMS 정명석과 같은 사이비이단의 교주나 동업하는 종교사기꾼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고대헬라어성경 디도서 3:10

(이단에 빠진 사람들 : 하이레티콘)은 본래 견해, 학파, 종파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단자들은 자신이 견해를 고집함으로써 '분파'나 '당파'를 만드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구별하는 사람'(a divisive person, NIV), '당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a man who is factious, RSV)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본절에서는 당시 그레데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관한 논쟁과 족보 이야기등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1:14)를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교훈과 전승에 대립하였다. (호크마 주석에서 갈무리)

 

오히려 이에 대한 바른 관점으로는 야고보서의 마지막 부분이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마지막 당부

 

한국교회에 전하는 이단피해자들의 호소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명령이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그들을 유난히 배려하라고 하는 이유는 “교회공동체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교회공동체의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단사역이란 특정교회만이 할 수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단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여 모든 교회가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영적으로 유괴되어 갇힌 사람들”이므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가져야 하며,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신천지 붕괴 후 쏟아져 나오게 될 수많은 영혼들을 예수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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