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사기 대출범과 기관장들 ‘협력 관계’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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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사기 대출범과 기관장들 ‘협력 관계’ 드러나
  • 김원식 리포터
  • 승인 2021.10.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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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8000억원대 사기 대출의 주범 서정기씨는 한국스마트산업협회장을 맡고 있었다. 서씨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몇몇 정부기관·기관장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정부 부처 이름을 앞세운 활동도 여럿 진행했다.

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25
[시사IN] 정희상 전문기자 승인 2014.06.13 08:26

지난 호 〈시사IN〉은 1조8000억원대에 이르는 금융권 대출 사기 사건의 주범(서정기 중앙티앤씨 대표)과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간의 수상한 거래 관계에 대해 고발 보도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서정기씨가 사기 대출한 돈으로 계약한 경기도 시흥 소재 ㈜신천지농장 등기부등본에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근저당권자로 올라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알고도 덮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곽 전 수석이 그 땅에 근저당을 설정한 사실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뒤에야 알게 돼 수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기 주범의 수상한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 “금감원 김 아무개 팀장이 지분을 갖는 조건으로 유착했다”라고 발표한 것으로 보아 경찰은 이 농장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 곳곳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는 곽 전 수석만은 모른 척했던 셈이다. 더욱이 경찰은 사기 사건 주범과 곽 전 수석의 수상한 거래 관계에 대한 단서를 잡고도 검찰에 이 내용을 이첩하지 않았다.

 

지난 2월 경찰이 대출 사기 주범 서정기씨의 중앙티엔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장면. 같은 건물에 자리한한국스마트산업협회 사무실은 수사하지 않아 축소 의혹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경찰이 대출 사기 주범 서정기씨의 중앙티엔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장면. 같은 건물에 자리한한국스마트산업협회 사무실은 수사하지 않아 축소 의혹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서정기씨와 수상한 커넥션을 맺은 정·관계 인사는 곽상도 전 민정수석뿐이었을까. 추적 결과 박근혜 정부 들어 몇몇 정부기관과 기관장들도 대출 주범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개체는 서씨가 회장을 맡아 대출 사기의 근거지로 삼은 한국스마트산업협회였다.
 

한국스마트산업협회는 2011년 스마트 산업 분야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상생 협력과 동반 성장을 내걸며 출범한 단체다. 20여 중소기업이 주도해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사단법인 등록 허가를 받았다. 중앙티앤씨 서정기 대표는 2012년 8월 2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업체 대표들을 이사로 선임하면서 협회를 사실상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소업체들을 적극 협회에 가입시켜 세를 확장하는 한편, 스마트 산업 관련 정부기관의 이름을 내건 행사를 주최하면서 대외 영향력도 키웠다.

협회는 이명박 정부에서 방통위 산하에 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서울전파관리소에 등록됐다. 최근까지 협회 회장은 서정기 대표가, 부회장은 김백철 다스텍 대표가 맡고 있었다.

서정기 협회장은 협회 산하에 11개 이사를 두었는데, 이들 중 6명이 이번 대출 사기 사건에 가담했다. 컬트모바일 대표 김 아무개씨, 엠엔테크 대표 김 아무개씨, 아이지일렉콤 대표 오 아무개씨, 다모텍 대표 전 아무개씨 등이 사기 대출 가담자로 체포되어 구속된 이 협회 이사들이다.

이처럼 한국스마트산업협회가 정부기관 산하에 등록되어 있고 협회 이사진이 대거 범죄에 연루되었는데도, 지난 3월 말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기 대출의 배후나 협회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은 채 6개 업체 대표들의 개별적인 대출 비리인 양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이 서정기씨의 중앙티앤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때 같은 건물 1층에 자리한 한국스마트산업협회는 그냥 지나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벌어진 대출 사기가 아니어서 협회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윤종록 미래부 차관이 협회의 초대 명예회장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경찰 수사는 이 협회 초대 명예회장이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이라는 점에서도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이 협회에 현재 회원사로 등록된 업체 수는 방송·통신·단말 제조·콘텐츠 산업 관련 중소기업 166개이다. 여기에는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을 명분으로 삼성전자(단말기 제조사), KBS(방송), KT(통신), 엠코리아 등도 참여하고 있다.

KT 부사장을 지낸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은 지난해 4월 입각 전까지 협회 초대 명예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KT 자회사인 KT ENS는 이번 대출 사기에 깊이 연루된 회사다. 이런 측면에서 윤 차관과 서정기씨 간의 관계에도 눈길이 간다. 구속된 협회장과 이사들은 주로 삼성전자와 KT 등에 마치 단말기를 납품한 것처럼 허위 매출채권을 만들어 은행권에 담보로 제출하고 돈을 빌렸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윤 차관이 연세대 공과대학 재직 시 스마트 산업 분야 중소기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한국스마트산업협회 명예회장직을 맡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회로부터 보수 등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도 없고 협회에 어떠한 지원이나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서정기 대표가 2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2012년 10월 이후 협회가 회원사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스마트산업협회를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소개하는 안내문을 발송했고, 그 결과 회원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현재 이 협회 166개 회원사 가운데 서씨가 협회장을 맡은 뒤 신규 가입한 업체가 140여 개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서씨는 정부 부처 이름을 앞세운 활동도 여럿 진행했다. 주로 문화부·미래부·방통위·공정위·경찰청·관세청 등 정부기관과 공동기획한 행사들이었다. 먼저 서씨는 지난해 상반기에 경찰청과 교육부 주최 및 후원으로 ‘학교폭력 제로 UCC 공모전’을 개최하고, 이어 관세청·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스마트용품 원산지·제조국가 표시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12월에는 미래부 후원 아래 ‘스마트폰 주변기기 우수 아이디어 및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지난해 4월 윤종록 협회 초대 명예회장에 이어 이성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단국대 초빙교수, 예비역 육군대장)을 2대 명예회장으로 위촉한 서씨는 ‘스마트 방위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군과도 손을 잡았다. 이성출 명예회장 위촉식에는 예비역 장성 및 국방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으며 ‘스마트 국방포럼’과 ‘스마트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진 서씨의 사기 행각은 올해 초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권을 상대로 수상한 대출 심사 과정에 대한 조사를 벌이다가 꼬리가 잡혔다. 범행이 드러나기 직전까지도 서씨는 정부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1월17일 백운찬 관세청장은 서씨에게 ‘관세 행정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명목으로 감사패를 수여했다.

서씨를 잘 아는 이들은 그가 거액의 사기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용으로 활용했으며, 그것이 큰 문제없이 대출 사기가 반복되는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한국스마트산업협회와 비호 세력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여러 공인들 이름이 거론되는 만큼 엉뚱한 이에게 불똥이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출 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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